The extra bit at the bottom of Australia: Tassie (Tasmania)
세월을 거슬러 사랑과 미움이 엇갈리는 관계를 맺어온 호주 본토와 남단의 푸른 섬, '타즈메니아' (하지만 남한 영토의 삼분의 이나 되는 거대한 섬입니다), 본토인들은 거의 매번 의도적으로 '타즈메니아' 섬이 없는 호주 지도를 그려서 이를 보기만 해도 열받는 '타즈메니안'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합니다.
멍청한 네덜란드 탐험가였던 'Abel Tasman'이 당시에 눈에 콩깍지가 씐건지, 뭔 지는 몰라도 그 야단 법썩을 떨며 타즈메니아를 발견하고도 바로 옆에 있는 광대한 호주 본토를 보지도 못한채 호주보다 '타즈메니아'를 먼저 세계 지도에 올린 것에 대한 호주 본토인들의 소심한 대갚음이라고 할까요.
'Abel Tasman'의 이름을 따라 결국 '타즈메니아'가 되었지만 식민지 초기에는 '타즈메니아'를 'Van Diemen's Land'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호주 본토인에게는 남미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기아나' (Guiana)의 악명 높은 감옥인, Devil's Island'의 영어 버전인 'Demon's Land'처럼 들렸답니다. 물론 현실은 훨씬 더 참혹했습니다.
호주에 도착한 영국 죄수들 가운데 '죄질이 극히 불량한 죄수'들만 다시 선별해 '타즈메니아'로 보냈습니다. 어두운 호주 역사를 돌아보면 호주 본토와 타즈메니아, 네 시작은 영국 죄수들의 유배지로 미약하였으나 특히 '타즈메니아', 네 나중은 당연히 심히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조차 한바탕 난리 부르스를 출만큼 짐승도 수용하기에는 열악한 감옥에서 받았던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시 '타즈메니아' 교정 당국은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이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Devil's Island'처럼 당시 호주 본토에서 'Van Diemen's Land'로 이송되는 죄수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반죽음이 될 만큼 수 백대의 채칙을 맞은 후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그런 비인간적인 타즈메니아 영국 죄수의 아픈 역사는 고스란히 '타즈메니아 원주민'들에 대한 전쟁과 학살로 이어집니다.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타즈메니아'에서 '사회 다윈주의' (Social Darwinism)로 무장한 백인들 앞에 '타즈메니아 원주민'들은 마지막 하나라도, 마지막 하나까지 '타즈메니아'에서 강제 도태되어야 할 열등한 존재였기에 무자비한 살육과 학살이 자행됩니다.
죄수들과 원주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타지' (Tassie)... 한번 방문해 보시면 너무 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과거 설탕같은 '타지'(Tassie)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소금같은 '타지'(Tassie)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 (right under one's nose)고 합니다. '타즈메니아'를 처음으로 탐험해서 세상에 알렸던 'Abel Tasman'을 '이런 내가 바보 같아서'라는 노래 가사처럼 '멍청한 바보' (Yo bloody galah)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등잔 밑이 어둡다' (Australia was right under his nose the whole time)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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