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나라 이야기 꽃을 피우다

호주인의 마음을 훔치려면...

yarn spinner 2024. 7. 8. 21:19

 

1788년 1월 26일, 영국의 죄수들을 실은 최초의 '수인 선단'(First Fleet)이 시드니 항에 닻을 내린 후 5년이 지난 1793년 1월에 어린이 여섯 명을 포함한 열 한 명의 영국인 자유 이주민들이 시드니 항에 도착합니다. 그 후로 약 60년 동안 현 일부 호주인들의 조상이 되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죄수들과 영국의 극빈 하류층 출신의 자유 이주민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영욕의 세월을 보냅니다. (That was the way of it with many current aussies' ancestors: dumped down here and scorned.)

 

1851년 '빅토리아'주에서 시작된 '골드 러쉬'로 전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노다지를 꿈꾸며 몰려왔는데 수 많은 중국인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가 아니었지만 백인들은 그렇게 느꼈답니다) 중국인들이 주 7일, 밤 낮으로 노예처럼 일하며 금을 채굴하여 중국으로 보내자 위협을 느낀 백인 광부들이 노조를 만들어 중국인 입국 금지 운동을 전개합니다. 1860년대에는 수 백 명의 '태평양 연안 섬나라 사람'들이 취업 사기로 호주에 입국 한 후 주로 북쪽 사탕수수 밭에서 노예처럼 일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중국인들과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멈춘 것은 1901년에 시작된 '백호주의' (The White Australia Policy) 정책입니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호주 정부는 '이 땅에서 노예제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라며 중국인들과 태평양 연안 섬나라 사람들을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본국으로 송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송환선 선장 임의대로 호주 영해 밖이면 어느 곳이라도 그들을 강제로 하선시켰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호주를 그렇게 떠났지만 일부는 끝까지 남아 음식점 창업으로 성공합니다. 광활한 호주에서 'A DECENT SIZED TOWN' (제대로 된 마을)을 판단하는 기준은 'pub'과 'school'과 '중국 식당'(음식점)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입니다. 제가 호주에서 'Truckie' (트럭 운전수)로 은퇴하기 전까지 수 많은 마을들을 지나 다녔지만 호주에서 '중국 식당'이 없는 '제대로된 마을' (a decent sized town)을 본 적이 없답니다.

 

 

나이 지긋한 호주인 친구들은 제게 '금광에서 시작된 '중국인 혐오증'은 맛있는 중국음식들을 즐기다 보니 사라져 버렸고 2차 세계 대전으로 생겼던 '일본인 공포증'은 신선한 스시롤과 사시미를 먹으며 다 잊었다고 합니다. 호주인들의 스시 사랑, 정말 대단하지요. 정말 호주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처험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려면 맛난 음식을 준비해 대접하면 됩니다.' (As Australians say, the way to someone's heart is through their stomach.)

 

 

'남자의 마음을 훔치는 가장 빠른 방법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양껏 먹이면 간단'한데 (The quickest way to a man's heart is through his stomach.) 제 와이프는 왜, 여태 그걸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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